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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명이 넘는 텔레그램 'n번방' 가담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
과거에도 수많은 성범죄 사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검찰과 경찰의 관대한 처분에 따라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지금도 'n번방' 관련자들이 "어차피 처벌 안 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소라넷→텀블러→텔레그램→디스코드→위커⋯뿌리 뽑지 못해 계속되는 악순환
온라인상에서 대형 성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근거지만 폭파됐을 뿐, 실질은 그대로였다.
이들은 바퀴벌레처럼 또 다른 장소를 찾아 금방 헤쳐모였다.
텔레그램이 터지면 디스코드로, 디스코드가 터지면 위커로 터전을 옮겨 다니고 있는 'n번방' 일당의 모습은 여태껏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n번방' 사건에 연루된 1만명 규모의 인원이 가장 최근에 꼬리를 밟힌 건 텀블러에서였다.
"여동생을 강간할 사람을 찾는다"는 게시글에 '좋다'고 달려든 사람이 9210명이었다.
차마 기사에 담을 수 없는 표현으로 '해당 행위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댓글로 밝힌 사람들이었다.
이들 9210명은 어디로 다 갔을까.
텀블러 속 끔찍한 인기 글 "여동생 성폭행할 사람?"
지난 2018년 초 텀블러에 '여동생을 성폭행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 논란이 됐다.
이 글에는 한 중학교 이름과 학생의 이름, 앳된 얼굴이 드러난 나체 사진 여러 장이 함께 올라왔다.
"길 가다 보시면 X먹어도 되시고요"라는 설명이 함께 "댓글로 하고 싶다고 하면 제가 개인마다 1:1 채팅 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이 게시글에 921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2257명이 해당 게시물을 자신의 블로그에 퍼갔다.
자신에게 '메시지를 달라'는 댓글도 1만개 가까이 달렸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은 20대 회사원 A씨.
이 사건은 불법 촬영물에 대한 조직적 신고를 해온 시민단체 DSO(디지털 성범죄 아웃)의 적극적인 신고로 수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A씨가 붙잡히며 많은 보도가 됐었다.
그러나, 그가 붙잡혔다는 내용에서 보도는 멎었다.
그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게시글은 사실이 아니었지만⋯그의 또 다른 범죄가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여동생 성폭행 제안'에 대한 내용은 다행히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자신의 텀블러 계정의 팔로워를 늘이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A씨가 올린 글에 적혀 있던 중학교에 알아봤지만 '여동생'으로 칭해진 피해자는 학교에 없었다.
하지만, A씨의 범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가짜 여동생' 사진 외에도 막 20살이 된 여대생 B씨 사진을 "전 여자친구 제보"라는 제목으로 텀블러에 올렸다.
정면 얼굴이 나온 사진에는 실명 이름표와 대학교 이름까지 나와 있었다.
A씨는 이 사진을 올리면서 "딴 남자랑 바람피우다 걸려서 헤어졌다"며 "반응 좋으면 (성관계) 영상과 연락처 올린다"는 글을 첨부했다.
실제 이 글에 호응한 일부에게는 B씨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이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지만, B씨의 신상 정보는 사실이었다.
이 글을 본 텀블러 사용자들은 B씨에게 음란한 메시지를 무더기로 보냈고. 이런 메시지에 시달린 B씨는 대인기피증까지 걸렸다.
이 외에도 A씨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버스 정류장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치마 속을 여러 차례 찍기도 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 3달에 걸쳐 모두 7차례였다.
美 국토안보부 협조받아 잡은 그, 4개 혐의에도 '징역 1년'
A씨는 사실 미국의 협조가 없었다면 붙잡을 수 없었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텀블러로부터 A씨의 인터넷주소를 확인해 한국 경찰에 넘겨준 덕분에 검거에 성공했다.
검찰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제11조 3항(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공연 전시), 정보통신망법 제74조 1항 2호, 제44조의7 1항(음란 문언 공연 전시), 제70조 2항(명예훼손), 성폭력 특례법 제14조 1항(카메라 이용 촬영) 등 4개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로톡뉴스가 단독으로 확인한 결과 1심 선고 형량은 징역 1년이었다. 서울남부지법 김국식 판사는 지난 2018년 10월 19일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라는 점을 들어 이같이 선고했다.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도 부과하지 않았다. 김 판사는 "그런 명령을 발령해서는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 '특별한 사정'에 대해서 김 판사는 "이 명령으로 피고인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와 예상되는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그렇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 측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고,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형을 줄여줘야 한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2심(서울남부지법 형사 1부·이대연 부장판사)은 감형하지 않고 징역 1년을 유지했다.
'성폭행 모의' 글에 좋다고 달려든 텀블러 이용자 9210명은 어떻게 됐을까
A씨가 처벌받긴 했지만, 2018년 텀블러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1만명에 가깝다.
모두 아청법 위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게시글을 자신의 블로그로 가져간 2257명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죄에 해당함이 분명했다.
이 조항은 단순 다운로드만 받아도 처벌되는 조항이다.
하지만 소지죄가 명확한 2257명을 포함해 이 글에 '좋아요'를 누른 9210명 중 형사 처벌은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처벌받지 않은 이들이 계속 살아남아 지금의 n번방까지 흘러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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